연대표
티스토리에서 타임라인 쓰기(simile timeline + 바로 데이터 넣기)
sseeookk
2011. 9. 17. 07:22
여기에 타임라인과 함께 데이터를 넣어 주었다. (데이터는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mydata_110917 id="data_110917" style="display:none">
<event start="1933" end="1937"
title="일본유학시대"
icon="http://whankimuseum.org/new_html/images/01_whanki/works_img02.jpg"
image="http://whankimuseum.org/new_html/images/01_whanki/works_01_img.jpg"
link="http://whankimuseum.org/new_html/01_whanki/index.php?checkPage=works_01">
종달새 노래할 때, 1935, 캔버스에 유채, 178 x 127 cm......
설명글을 적는다.
</event>
.......
</mydata_110917>
종달새 노래할 때, 1935, 캔버스에 유채, 178 x 127 cm
김환기의 일본 생활은 1931년 일본 니시기시로(錦城)중학교로 편입하면서 시작한다.
화가로서의 일본유학시대는 2년 후인 1933년,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부에 입학부터라 할 수 있으며, 후지다 쓰구지, 도고 세이지 등에게 지도를 받게 된다. 이들은 당시 유럽에서 갓 귀국한 유학파로써 김환기에게 자연스레 입체파와 미래파의 화풍을 사사하게 된다.
김환기는 1937년 귀국 이전까지 자유전, 백만회 등의 활동을 하면서, 유영국, 문학수, 이중섭, 이규상 등과 교우로써 활동하였고 이후 이들은 한국 추상미술의 초석을 이룬다.
삼각산, 1954, 캔버스에 유채, 55 x 36.5 cm
김환기는 추상미술에 대해 교우들과 함께 단체를 결성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한국 전쟁으로 인해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되고, 해군 종군화가로 일하면서 부산피난시절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남기게 된다.
이 시기 그의 작품에는 바다, 천막, 여인, 항아리 등으로 피난지의 모습들 묘사한 작품들이 근간을 이루며, 반 추상의 간결한 선들은 조형의 기본을 탐구하던 기하학적인 모습에서 두터운 마티에르 속에 한국의 모습들을 표현하는 선으로 발전하게 된다.
매화와 항아리, 1957, 캔버스에 유채, 53 x 37 cm
전쟁이 끝나고 그는 프랑스 파리에 터를 잡고 본격적인 추상화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이 시기 그는 주로 항아리, 십장생, 매화 등을 기본으로 한 추상 정물화 작업을 하게 되며, 이는 후에 고국산천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다.
운월, 1963, 캔버스에 유채, 193 x 129 cm
이 시기 그의 작품은 한국의 자연을 노래한다.
산, 달, 구름은 그의 주요 소재이며, 한국의 자연은 김환기의 손을 거치면서 푸른빛을 근간으로 한 간결한 추상화로 재탄생하게 된다
무제 10-Ⅷ-70, 코튼에 유채, 288 x 213cm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석한 그는 미국행을 결심하게 되고, 과슈 스케치북 몇 권을 챙겨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1964년부터 1970년 첫 점화의 형태가 나오기 까지 엄청난 양의 추상화 실험들이 이뤄지게 되고, 점 · 선 · 면으로의 귀착을 위한 다양한 조형 연습들은 색면 추상, 십자구도, 산월 추상 등의 모습으로, 종이죽 및 신문지에 유채와 같은 다양한 재료로 남아있다.
이 시기 그의 대표 장르인 ‘점화’가 탄생하는데, 점화는 캔버스에 유화 물감이라는 일반적인 서양화의 재료를 사용하면서 표현에 있어 자연스러운 번짐 효과를 더하여 세계적인 코드로의 한국 미술을 표현하는 그의 대표적인 장르다.
점화는 1970년 한국일보사 주최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같이 점을 찍고 여러 겹의 네모를 둘러싸는 점화의 기본 스타일로 시작한다. 점화의 점들은 군(群)을 이루며 면이 되고, 면들은 서로 나뉘고 모이고 회전하는 등의 다양한 형태로 변화한다.
무제 07-Ⅶ-74, 코튼에 유채, 234 x 183 cm